제임스 카메론 일화

 

한 남자의 이력서 제임스 카메론 일화,

왕따까지 당한 남자의 이력서 제임스 카메론 일화

 

 

하지만 인생 역전한 제임스 카메론 일화..

제임스 카메론 일화 한 번 보시겠어요?

 

 

제임스 카메론 일화,왕따까지 당한 남자의 이력서

제임스 카메론 일화

한 남자의 이력서

나이 31 경력 트럭 운전수 학력 대학교 중퇴, 학창시절 왕따

 

 

제임스 카메론 일화

사람들은 그를 찌질이 인생이라고 불렀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하지만 이력서에는 적혀있지 않은 그의 또 다른 모습

 

 

제임스 카메론 일화

영화광, 놀라운 상상력, 풍부한 예술적 감각

이력서에는 적을 수 없는 그의 잠재력

 

 

제임스 카메론 일화

그런 그가 가지고 있던 꿈,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 일화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나이로을 쓰던 그는

 

 

제임스 카메론 일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작은 영화제작소에 취직한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일을 하며 그가 틈틈이 완성한 시나리오가 팔인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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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달러

그리고 그가 요구한 단 하나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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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의 감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시요"

 

 

제임스 카메론 일화

그렇게 만들어진 저 예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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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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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감독이 도대체 누구야?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찌질이가 계속해서 만들어낸 작품들

 

 

제임스 카메론 일화

에이리언 타이타닉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일화

지구 최고의 감독 칭호를 받은 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론 일화

과거 그는 서른이 넘도록 변변한 일자리 하나 갖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왜냐면 그의 이력서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우리는 종종 미래의 가능성을

단순히 지금 내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것들로 판단하곤 한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하지만 당신의 이력서가 지금 비어있다고 해서

 

 

제임스 카메론 일화

당신의 미래까지 비어있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모두가 찌질이라 불렀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훗날 오스카 상 수상대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I'm the King of the world"

제임스 카메론 일화,왕따까지 당한 남자의 이력서!!

 

 

제임스 카메론 일화

제임스 프랜시스 카메론(영어: James Francis Cameron 제임스 프랜시스 캐머런, 1954년 8월 16일~)은 캐나다계 미국인 감독, 각본가, 제작자, 편집자 및 투자자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터미네이터》(1984), 《에이리언2》(1986), 《어비스》(심연; 1989),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1991), 《트루 라이즈》(1994), 《타이타닉》(1997), 그리고 최신작 《아바타》(2009) 등이 있다. 2009년 12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올랐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카메론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 카푸스카잉에서 예술가이자 간호사였던 어머니 시즐리와 엔지니어인 아버지 필립스 카메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자랐고 1971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브레아으로 이사를 간다.

 

그는 캐나다에서 이주할 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Fullerton College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으나 영문학으로 전과하였고, [California State University Fullerton]로 편입하였다.

 

그는 스타워즈를 좋아했고 그래서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루카스가 다녔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여 많은 도서를 읽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 후 그는 영화에 흥미를 갖고 단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식당웨이터, 오렌지카운티 지역 트럭 운전수로 일하기도 했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그러던 중 1977년 《스타 워즈》를 관람하게 되는데 이것을 보고 나서 그는 바로 운전수로서의 일을 그만두고 영화 제작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가 영화극본가 시드 필드의 책인 '스크린플레이'를 읽고 그것은 과학과 예술을 통합시키는 걸 가능케 한다고 했다.

 

그는 그 후 과학서적이나 픽션을 읽게 된다. 본격적인 영화 제작을 위해 그는 그의 지인들과 함께 돈을 모았고 카메라, 필름, 렌즈, 스튜디오 등을 빌림으로써 그의 커리어가 시작됐다.

 

 

그는 그의 제작 기술을 계속 공부해 나갔고, 제작자 로저 코먼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코먼의 지도 아래 점점 기술이나 제작법을 연마했고 드디어 1980년 그의 아래서 예술 감독으로서 데뷔한 《베틀 비욘드 더 스타즈》를 감독한다.

 

또한 1981년에는 영화《뉴욕을 도망치다》와 《갤럭시 오브 테러》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이듬해인 1982년에는 공상 과학 영화《안드로이드》에도 참여한다.

 

카메론은 1981년 영화《피라냐 2》에서 첫 감독을 맡으며 데뷔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감독이 프로젝트에서 나갔고 그를 고용했던 이탈리아 감독과도 결별했었기 때문에 성공하진 못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촬영했으며 자메이카에서도 촬영했다.

 

제임스 카메론 일화

 

카메론은 《터미네이터》의 대본을 완성한 뒤 이것을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프로젝트 회사가 그와 계약했지만 그의 계획을 꺼려했다.

 

결국 그는 헴데일 픽쳐스과 작업하기로 했고 영화 제작자이자 극본가이며, 당시 그녀만의 개인 회사를 차렸던 게일 엔 허드를 만났고 시나리오에 대해 들은 그녀는 그의 시나리오를 단 1달러에 샀다. 그녀는 그를 프로듀서로서 고용했고 마침내 처음으로 총감독이 되어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제작에 돌입한 그는 배역을 누가할지 고민했는데 특별히 그는 근육질의 남성을 바라진 않았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영화의 출연한 바 있는 렌스 헤릭슨을 만났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점심을 같이하면서 배역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그가 배역 중 한 명인 카일 리스에 정해졌었지만 다시 짜여져 결국에는 오늘날과 같은 배역이 짜여졌다.

 

터미네이터는 박스오피스에서 대성공을 이루었다. 64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7천 8백만 달러의 이익을 남겼고, 당시 공상 과학 액션 영화의 정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